서론
*트빌리시(Tbilisi)*는 조지아(Georgia)의 수도이자 가장 큰 도시로,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에 위치해 고대부터 다양한 문화가 교차해온 중심지다. 코카서스 산맥 남쪽, 쿠라강(Mtkvari River)을 따라 형성된 이 도시는 지리적 특성 덕분에 실크로드의 교통 요충지로 번성했고, 여러 민족과 종교, 제국의 흔적이 도시 전역에 깊이 새겨져 있다. 그 결과 트빌리시는 동서양의 건축과 예술, 음식, 일상이 자연스럽게 뒤섞인 독특한 도시 풍경을 형성하고 있다.
고대 페르시아와 오스만 제국, 러시아 제국, 소비에트 연방을 거치며 트빌리시는 여러 차례 파괴되고 다시 세워졌지만, 그만큼 강한 생명력과 유연한 문화를 지닌 도시로 성장해왔다. 구불구불한 언덕길과 벽돌 골목, 나무 발코니가 매력적인 구시가지에서는 중세 유럽과 이슬람의 건축 양식을 동시에 체험할 수 있고, 신시가지에서는 세련된 유럽풍 카페와 현대 미술관, 디자인 숍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최근에는 디지털 노마드와 예술가, 유럽 여행자들에게 트빌리시가 ‘가성비 좋은 감성 도시’로 주목받고 있다. 물가가 비교적 저렴하면서도 문화적 깊이가 풍부하고, 와인과 음식 문화가 뛰어나며, 무엇보다도 도시의 정체성이 모호하지 않고 선명하다는 점에서 트렌디한 여행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트빌리시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머물고 싶은 도시’로 변화하고 있으며, 그만큼 새로운 영감과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장소다.
시간을 품은 도시, 구시가지와 나리칼라 요새의 매력
트빌리시의 구시가지는 도시의 역사와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공간이다. 이 지역은 쿠라강과 언덕을 따라 형성된 도시의 원형으로, 좁은 골목길과 고풍스러운 벽돌 건물, 나무 발코니가 인상적인 집들이 이어진다. 이곳을 걷다 보면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다양한 건축 양식이 어우러져 있는 독특한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특히 메테히 교회(Metekhi Church)와 시오니 대성당(Sioni Cathedral)은 중세 조지아 정교 건축의 정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종교 유산으로, 조용한 예배와 성스러운 분위기가 깊은 인상을 남긴다.
구시가지 언덕 위에는 *나리칼라 요새(Narikala Fortress)*가 우뚝 서 있다. 4세기에 처음 세워진 이 요새는 페르시아, 아랍, 몽골,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국의 손을 거치며 증축되고 보완되어 온 군사 요충지로, 트빌리시의 중심을 상징한다. 요새 위에서 바라보는 트빌리시의 전경은 단연 압권이며, 낮에도 좋지만 특히 노을 무렵 붉은 빛으로 물든 도시를 내려다보는 경험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장면이 된다.
나리칼라 요새 아래에는 천연 유황온천인 아바노투바니(Abanotubani) 지구가 위치해 있다. 이곳은 트빌리시라는 이름(‘더운 곳’이라는 뜻)의 기원이 되었으며, 수세기 동안 도시민과 여행자들의 피로를 풀어준 곳이다. 동굴처럼 생긴 둥근 지붕의 온천탕과 중동풍 건물들은 이슬람과 조지아 문화의 절묘한 결합을 보여주며, 온천욕 후에는 지역 전통 찻집이나 레스토랑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트빌리시 구시가지는 단순히 오래된 유적이 아니라, 오늘도 활발하게 살아 움직이는 역사적 공간이다.
예술과 젊음이 흐르는 자유로운 거리 풍경
트빌리시는 오래된 역사 속에서만 머물지 않는다. 특히 루스타벨리 대로(Rustaveli Avenue)와 마르자니슈빌리(Marjanishvili), 베라(Vera) 지구는 젊은 예술가와 디지털 노마드들이 모이는 활기찬 공간이다. 이 지역에는 조지아 국립미술관, 오페라하우스, 영화관, 독립 갤러리 등이 밀집해 있으며, 거리 곳곳에서는 거리 악사와 일러스트 작가, 공연예술가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창작물을 선보인다. 트빌리시는 예술이 일상에 깊숙이 스며든 도시다.
특히 루스타벨리 거리 주변에는 독립 서점과 북카페, 미술용품점, 공연 공간이 많아,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여행자들에게 큰 영감을 주는 장소다. 이곳에서는 조지아 전통 음악인 폴리포니 공연도 자주 열리며, 트렌디한 바와 라이브 음악 공간에서는 유럽 재즈, 테크노, 포크 음악이 밤을 수놓는다. 유럽의 유명 예술 도시들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이곳의 예술 생태계는 아직은 덜 알려졌지만, 바로 그 점이 오히려 더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또한 조지아의 수도답게 와인과 음식 문화는 트빌리시의 중요한 자산이다. 수제 와인을 생산하는 작은 바들이 도심 곳곳에 숨어 있고, 조지아 전통 요리인 히늘리(만두), 하차푸리(치즈빵), 로비오(콩요리) 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레스토랑이 인기를 끌고 있다. 단순한 관광지에서 맛보는 음식이 아니라, 문화와 역사가 깃든 요리를 먹는 경험은 여행의 밀도를 한층 높여준다. 트빌리시는 감각적이고도 여유로운 도시로, 젊은 창작자와 여행자들이 함께 머물며 만들어가는 새로운 문화의 터전이 되고 있다.
조지아 정체성과 사유의 공간으로서의 트빌리시
트빌리시는 단지 아름다운 도시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조지아라는 나라의 정체성이 농축된 공간이며, 현대 조지아인의 자부심과 고민이 드러나는 도시다. 소련 해체 이후 자주성과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트빌리시는 수많은 정치 시위와 시민운동의 중심지가 되어왔고, 그 흔적은 지금도 거리의 조형물과 벽화, 시민 광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자유와 독립을 향한 열망은 도시의 공공 디자인, 예술, 문화 속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대표적인 공간이 바로 *리케 공원(Rike Park)*과 그곳에 연결된 *평화의 다리(Peace Bridge)*다. 이 다리는 유리와 금속으로 구성된 현대 건축물로, 고대 도시와 현대 도시를 연결하는 의미를 상징적으로 담고 있다. ‘평화’라는 이름 자체가 조지아의 현재와 미래를 상징하며, 이를 둘러싼 도시의 변화는 시민 삶의 질과 정체성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예다.
또한 트빌리시는 소수자와 다양한 가치관을 포용하려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도시다. LGBTQ 문화에 대한 논의, 언론 자유에 대한 움직임, 환경 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꾸준히 커지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도시 풍경의 변화가 아니라, 조지아 사회 전반의 성숙을 상징하는 흐름이다. 트빌리시는 자신들의 과거와 싸우고, 미래를 설계해가는 과정 속에 있는 도시이며, 그 진지함은 여행자에게도 큰 감동을 준다.
결론
트빌리시는 단순한 유럽 여행지나 동유럽의 낯선 도시가 아니다. 그것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전통과 젊음, 예술과 철학, 신앙과 민주주의가 조화를 이루며 살아 숨 쉬는 복합적인 도시다. 이곳을 걷는다는 것은 단지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감정, 정체성과 문화의 결을 함께 느끼는 경험이다.
트빌리시는 짧은 체류로는 온전히 담을 수 없는 도시다. 그만큼 매 순간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며, 머물수록 더 깊이 있게 다가오는 매력을 품고 있다. 사람들의 환대와 도시의 리듬, 정갈한 풍경과 감각적인 공간은 여행자에게 단지 즐거움뿐 아니라 삶의 균형을 되찾는 치유의 순간을 선사한다.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에서, 고요하지만 강하게 자신만의 색을 유지하는 도시. 트빌리시는 그런 도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당신은 새로운 질문을 품고, 더 넓은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